Lyva의 인생기록소

DAY 3. 자기역사 연표 만들기 1/2

by Ka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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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로 글을 써보는 것도 벌써 3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예전에도 자기 발견을 목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본적이 몇번 있었다. 그럴때 마다 느끼는 것은, 나는 추억이나, 경험들을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솔직히 고등학교 이전 기억은 거의 없다.

내 인생은 총 3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었고, 그 과정과 함께 한번 알아보자 

 

1. 출생 ~ 유아기 (1998년 ~ 2004년)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외할머니, 할머니가 많이 돌봐주셨고, 이때 어떤 것을 하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는것이 없다. 중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말고는 큰 사건은 없이 내 유아기는 무난무난하게 지나갔다.


2. 초등학교 시절 (2004 ~ 2010)

나는 두개의 초등학교에 다녔다.

첫번째 초등학교는 대구 동구에 있는 효신 초등학교였다. 어릴적부터 살던 동네에서 1~2명의 친구가 있었고, 기억나는 것은 어떤 것을 해도 재미가 있고 하루종일 뛰어놀았다는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흉터는 이때 얻은 것이였다. 축구하다가 다리에 큰 흉터가 생기고, 계단에서 굴러서 머리에 흉터도 있다. 추억보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인생에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물어보면 이때인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

 

두번째 초등학교는 성동초등학교로, 부모님이 좀 더 교육을 많이 시키기 위해서 대구 수성구로 이사왔다. 이때, 이별이란 것을 처음 경험한 것 같다. 친한 친구들과 더 이상 못 만나는 것이 정말 슬펐던 것 같다. 좀 더 살기 좋아졌고, 공부 환경도 좋아졌다. 이때도 제대로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고, 매일 친구 2명과 함께 3명이서 뛰어다니면서 놀고 그랬다. 그리고 딱히 기억나는 사건은 없다.


3. 중학교 시절 (2010 ~ 2013)

중학교는 그대로 그 동네에 살면서 능인 남자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큰 일 없이 무난무난 하게 살면서, 성적도 평균만 하고, 유희왕카드도 하고 술래잡기를 한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종일 뛰어다니고, 학교 곳곳을 다 돌아다니고, 매일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다니면서 원하는 것을 다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그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았다.


4. 고등학교 시절 (2013 ~ 2016)

그리고 학교는 그대로 옆에 있는 능인 남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매일 다니던 길을 3년 더 다니게 된 것이고, 몇몇 친구들은 공고를 가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나도 입시 준비를 하면서 공부를 매일 하고, 학교에만 있고, 집에 오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의 연속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때 애니메이션에 빠져서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때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나의 첫번째 터닝포인트가 다가왔다.

내가 생각하는 터닝포인트는

1. "현재 상황이 불편함"

2. "변화를 유발하는 특정한 사건"

3. "조력자"

이렇게 세가지 요소가 완벽하게 맞물려야 내 인생을 바꿀만한 사건이 된다고 생각한다. 순서대로 보자면,

1.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데 대체 왜 내가 공부를 해야되는지 몰랐다. 너무 하기 싫었고 그냥 하기가 싫었다

2. 1년 동안 한정아 선생님을 만나고 배웠다.

3. 2학년 담임선생님.

이렇게 세가지 조건이 맞물리면서 나의 의미있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처음으로 부임하신 분이여서 열정이 엄청나셨다. 실제로 사립학교인데, 대학교를 수석졸업하시고 바로 들어오신것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실력도 좋으시고, 학생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정말 예뻤다. ㅎㅎㅎ 그리고 선생님과 1년동안 다양한 활동과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왜 공부해야되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성적별 분반수업에서 선생님이 맡은 최상위반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공부를 엄청 열심히 하기도 했고, 이때 성적이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점프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선생님은, 단순히 영어만 가르쳐주는게 아닌, 좀 더 큰 숲을, 인생의 의미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신 것 같다. 그당시 나는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에 큰 의미를 주었고, 아직도 매년 찾아뵙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은 별일은 없었고, 공부를 하고, 수능을 치고, 내가 원하는 성적이 안나오고, 원하는 대학에 못갔다. 원래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대를 가고 싶었는데, 컴퓨터 공학과로 가게 되었다.


5. 대학교 시절 1 (2016 ~ 2018)

이제 성인이 되었다. 대학교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자유를 만끽했다. 매일 친구들이랑 술마시면서 놀고, PC방을 가고, 과제하고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동아리도 3~4개 씩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했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였다. 그리고 1학년이 끝나기 전, 가장 친한 무리의 친구들이 각자 사정으로 학교를 쉬거나 만나지 못하게 되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면서, 나는 한 동아리의 회장이 되었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나를 뽑아준 사람들을 위해 더 노력하고, 좋은 경험을 같이 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동아리와 함께 봉사를 가거나, 교류도 많이 하고, 매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리더십이란게 없던 나에게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고, 그와 동시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것도 많이 알게 되었다. 

 

2학년을 마친 후 겨울방학때 일본 단기 교환학생으로 선정되서 일본의 대학교 연구실에 갔다 왔다. 가서 한 것은 별로 없지만, 도쿄여서 연구실이 끝나면 연구실 사람들과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고 정말 재미있었다. 단기였지만, 거의 놀기만 하고온 기억밖에 없다.


6. 군대 시절 (2018 ~ 2019)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군대를 가게되었다. 통신병으로 논산훈련소에 들어갔고, 큰 문제 없이 생활했다. 오히려 운동도 더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21사단(강원도 양구)로 발령이 났다. 원래는 통신병이라서 통신학교에서 교육을 1달 듣고 발령이 되는데 나는 바로 사단으로 가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강원도 산골짜기를 가서 보충대대로 잠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소위 말하는 뺑뺑이로 내가 갈 부대를 뽑았다. 나는 딱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사단 직할 수색대대'에 가게되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실제 DMZ와 붙어있는 사단만 있는 특수부대로, DMZ안에 들어가서 북한군의 침투를 조사하고, 매복, 수색하는 작전을 하는 곳이였다. 위험한 부대이며, 엄청 힘든 부대였다.

 

처음 수색대대의 인상은 기억이 난다. 분명 부대안에 들어갔는데 건물이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컨테이너 몇개들.. 그렇다 나는 컨테이너 생활관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대대장님을 만나고 대대장님은 작전을 타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으셨다. 실제로 작전을 타면 가장 힘든 소대로 가게되고 고생을 가장 많이 한다고 들었다. 나는 이왕 온것 가장 빡센 곳에서 가장 열심히 하다가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손을 들었고, 나는 원하던 대로 작전소대로 가게 되었다. 그날 부모님이 중대장님께 전화를 해서 진짜 내가 수색대대를 가게된 것이 맞냐고 물었던 해프닝도 있었다.

 

그렇게 힘든 군생활을 하고 있을때, 나의 두번째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1.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또한 열심히 살면서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었음.

2. 매일 저녁 선임이 들려준 자신의 미래 계획 + DMZ에서 폭설에 고립되서 죽을뻔한 경험

3. 강경훈 형

이렇게 세가지 조건이 맞물리면서, 내 인생은 두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매일 쉬는 시간에 TV보고 놀았던 나는 선임의 구체적인 계획과 노력을 보고,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군대에서 자격증 공부, 운동, 독서를 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하였다. 남들이 쉬고 있을 때도 책 한페이지라도 더 읽으려고 하고, 매일 노트에 정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결과 군대에서 자격증 3개를 취득했고, 많은 것을 남긴채 전역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터닝포인트를 정리하자면, "내가 왜, 어떻게 열심히 살고, 성공하고 싶은지 고민을 하게 된 것"라고 할 수 있다. 


7. 대학교 시절 2 (2019 ~ 2021)

전역을 하고 나에겐 3가지 큰 사건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유럽여행이였다. 군대 동기와 함께 3주동안 유럽여행을 갔다왔는데, 세상은 넓고 볼게 많다는 것을 느꼈고,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덤으로 태풍으로 원래 가려는 공항에 착륙을 못해서 다른 나라에서 내렸다가 다시 온 경험도 했다.

 

두번째는 우울증이였다. 복학을 했지만, 코로나로 학교도 못가고 사람을 못만나면서 나는 나태해졌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우울해지고, 아무것도 못할 것이고, 너무 외로웠다. 그렇게 몇개월을 슬픔에 빠져 보내던 중, 계속 자아성찰을 하다가 더이상 외로움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을 좀 더 알아가고, 사랑하니, 혼자 있어도 상관이 없었고, 그 이후로는 우울함도 싹 사라지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남게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ENFJ에서 ENTJ가 되었다.

 

세번째 사건은 2021년 상반기에 있었다. 바로 세번째 터닝포인트였다.

1. 나자신에 대한 것을 너무 모르고, 어떤 것을 하던지 남의 눈치를 보고, 자신을 믿지 못하였음

2. 트라우마나, 나의 행동에 모든 의미를 긍정해주고 도와준 심리상담

3. 공지수 심리상담선생님

이러한 배경들로 나는 한번 더 성장하게 되었다. 키워드는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고, 나 자신을 더욱 많이 알게되었고, 내가 왜 그런행동을 했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왜그런지, 나는 누구인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모든 질문에 고민을 하고 상담을 받았다. 인생에서 자신을 믿고 긍정해줄 한명만 있어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그때부터 진정한 나 자신을 알고 인생을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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